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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재(淵齋) 송병선 선생 생가 복원 건의안
작성자 대전동구의회 작성일 2015-01-09 조회수 946
발의의원 원용석 회차 0 채택일 2015-01-09
수신처

존경하는 이명현 대전보훈청장님.
 

계족로 342-1(성남동 44-27번지) 일원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키고, 국가적 위기가 닥치자 고종에게 20여 차례나 상소를 올려 내수를 정비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 외세를 물리치도록 충언을 한 연재 송병선 선생(1836∼1905)의 항일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연재 송병선 선생이야말로 한말과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시절을 비춘 밝은 등불과 같은 존재이지만, 생가지를 알리는 조그마한 표지석과 안내판만이 홀로 선생님의 구국 정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과거 선생의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몸채를 비롯한 사랑채 등 여러 건물들이 1,400여 평의 대지위에 서 있었으나, 그 후 많이 변모하여 그 자리에는 상가 빌딩과 주택 등의 건물이 들어서면서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비록 흔적은 없어져가고 있지만, 아베 일본 총리의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는 망언에 선생님의 고귀한 말씀은 오늘날 우리의 호국 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나라가 망하게 되고 백성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일제가 만일 기필코 제멋대로 무례하게 군다면 300개의 고을 안에 어찌 얼굴에 피 칠을 하고 닥치는 난을 막을 사람이 없겠습니까.”
선생께서는 고종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전세계에 을사늑약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알려 조약을 무효화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도록 주청하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귀향 당하게 되자, 1905년 12월 30일에 임금과 백성, 그리고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셨습니다.
 
옥천의 이지당, 광주의 만주사, 영산의 풍천당, 금산의 용강서당, 영동의 빙옥정, 무주 구천동의 서벽정, 거창의 병산서재, 지례의 세심대, 서천의 풍옥헌, 성주의 노강, 진안의 이산묘 등은 연재가 강회와 향음례 등을 통해 유림을 구국의 길로 인도하던 대표적인 장소이자 선생의 뜻을 기린 곳입니다.
 
출생과 관련이 없는 다른 시·군·구에서 조차 선생의 큰 뜻이 지역주민을 단결시켜주고 애향심을 높여 주는 랜드마크로 인식해 문화 유적 보존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 대전은 아쉽게도 송병선 선생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본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본 국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독도 망언, 위안부 사과 거부, 독자적 방위력 강화 등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일련의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존경하는 이명현 대전보훈청장님.
 
연재 송병선 선생의 학문적 경지와 나라사랑의 마음은 21세기 도시 경쟁시대에 대전시민이라면 자랑스러워하고 배워야할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송병선 선생의 생가지로 추정되는 계족로 342-1(성남동 44-27번지) 일원에 연재 송병선 선생의 생가 복원을 추진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건의 드립니다.
 
 
 
 

2014년 12월 일
 
대전광역시 동구의회 의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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