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유독 소를 좋아하다보니 화가 이중섭은 소도둑으로 몰린 적도 있고, 소와 입을 맞출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소를 많이 그린 이유는, 죽도록 일만 하는 소가 다른 나라사람한테 압제를 받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설움과 비슷한 것 같아서 였다는 것이다. 내친김에 객쩍은 마음으로 이중섭의 화풍에 우리네 세태를 드리워본다.

화풍의 첫 번째 장르는 친인간적이며 듬직한 소의 모습인데, ‘소를 든 사람’에서 보이는 그의 초기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소에 대한 경의로움 속에 민족적이고 신화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개와 함께 소는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식솔로서, 효과적으로 농사와 이동편의를 도와주며 우유를 제공한다. 배설물은 거름이나 땔감으로 쓰이며,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 뿔까지 주고 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작품 ‘흰 소’는, 형상을 따라 의미 있게 길게 그어진 검은 선과 누런 선의 배합에서, 마치 살아 있는 소가 한껏 자존심을 뽐내며 거친 숨을 내쉬는 모습으로, 공격 직전의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서려 있다. 농사짓는 과수댁이나 노인들에게는 더없는 집안의 버팀목이요 가장이다.

두 번째 장르는 처자식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가족 이별의 아픔에서 나타나는데, 이중섭은 1940년대에 ‘소와 여인’ ‘소와 어린이’ ‘소와 남자’ 등을 그린다. 이중섭의 환영인 소는 인간애와 고독을 응시하고 있다. 소답지 않게 애완동물처럼 여인의 배를 핥는 모습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학을 안고 있는 여인의 옆구리에 머리를 기댄 채 눈물을 머금은 눈망울에는 스미는 고독감이 엿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집안의 가장도 버팀목도 아닌, 역할 상실자가 되었다.

세 번째 장르는 1950년대에 그린 ‘싸우는 소’ 두 작품이다. 하나는 푸른 소와 누런 소의 싸움으로, 배경의 붉은 색조와 함께 색채감이 화려하다. 이 소들의 한 치 물러설 수 없는 격돌은, 1년 전 발생한 천안함과 연평도 피폭사태에 이르는 남북긴장과 여야정쟁의 패러디이다.

또 하나의 ‘싸우는 소’ 작품은 이념과 체제의 색채는 아랑곳없이 푸른색과 누런색이 한 가지 색채로 변하더니, 마침내 난투 끝에 어느 한쪽이 고꾸라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바탕조차 어둑한 군청색 속에서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는 것처럼 어느 쪽도 이겼다기 보다는 함께 공멸하는 모습이다.

네 번째 장르는 소들의 수난이다. 1954년에 그려진 ‘소, 비둘기, 게’라는 그림은 지금까지 근엄하고 우직하고 힘차게 그려진 소 그림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작품이다. 위로는 비둘기가 소뿔을 잡고, 밑에서는 큰 게 한 마리가 소의 불알을 집게다리로 물자 소는 우거지상이다. 듬직한 소의 모습이 아니라, 어이없는 것들에 곤두박질 당한 채 낑낑대는 모습이다. 이윽고 ‘연못이 있는 풍경’에서 보이는 것처럼, 절망에 빠진 초췌한 사람이 소를 바라보며, 그렇게 사느니 연못으로 들어가라고 이른다. 구제역에 걸리자 언제 보았느냔 식으로 잔인하게 집단살처분, 매몰했던 세태를 이중섭은 예견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장르는 인간들의 수난이다. 1940년대의 ‘말 탄 남자를 뿔로 쳐내는 소’, ‘사람을 치는 소’나, 1950년대의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황소’, ‘떠받으려는 소’, ‘꼬리가 묶인 채 서로 죽이려는 반인반우’라는 작품들은 이제 더 이상 선한 눈망울로 인간에게 순종하는 소가 아니다.

한 치 앞도 모른 채 소들을 잔인하게 무차별 생매장하여 수질·토양 등 생태계를 파괴하면서도 육식을 끝내 좋아하는 인간에게 광우병, 알츠하이머병 등 각종 질환을 안겨주는 등 인간에게 무차별 보복을 한다. 보복이라고 해도 소는 인간을 직접 해코지하지 않는다. 꼬리가 묶여 불가분 두 마리의 반인반우(半人半牛)가 싸우더라도 망치와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은 결국 인간들끼리이다. 대가리 터지게 싸우는 인두를, 소는 몸통으로 받쳐줄 따름이다. 이게 재앙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牛)여, 우(牛)여, 부디 인간을 용서하오!